글 _ 조재
사진 _ 조재
처음 만난 지명 ‘석파령’
석파령이라는 지명을 처음 접한 건 2021년 가을이었다. 오랫동안 춘천에 터를 잡고 살아온 어르신들의 구술생애 인터뷰를 담당하고 있을 당시 만난 송옥순 님과의 인연이 그 시작이다. 고목 같은 거대한 은행나무가 보이는 덕두원 송옥순 님의 자택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1930년대 태어나 가평에서 춘천 서면 덕두원으로 시집오며 힘든 시집살이를 하게 되었다는 그의 이야기에 ‘새파랑 고개(석파령 고개)’라는 지명이 등장했다.
“산잔등을 빙- 돌아 비탈을 쏟아져 내려가면 싸리재가 나오고, 신작로가 떡 나온다니까. 새파랑 고개로는 바퀴 네 개 달린 인력거도 많이 끌고 당겼어요.”
- 송옥순 -
옛날에 가평에서 춘천으로 가려면 다 석파령너미길을 넘어야 했다는데,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도 그 길이 눈에 훤한 듯했다. 싸리재(가평 북면)며 석파령이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지명들이 대화를 가득 채웠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자전거처럼 사람이 페달을 밟는 형태의 인력거가 너덧 대는 한꺼번에 다녔다고 하니, 석파령너미길이 아주 좁은 길은 아니겠다 싶었다. 더디퍼런트트래블을 운영하는 알플레이 본사가 마침 춘천 서면 덕두원에 있어 언젠가 한 번쯤 가보면 좋겠다 정도의 가벼운 인상이 남았다.
역사와 시대가 녹아 있는 길
석파령너미길은 춘천 봄내길 중 세 번째 길로 서면 당림리와 덕두원리를 잇는다. 덕두원 봉덕사와 수레너미고개까지 지나면 방동리가 나온다. 마지막 종착지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칭송받는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묘. 장장 다섯 시간을 걷는 꽤 대장정 로드다. 가평을 지나 춘천으로 이어지는 자동차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모두 석파령너미길을 통해 춘천에 오갔다고 전해지는데 육상길이 아닌 북한강을 따라 뱃길로 이동하기도 했다고. 넓은 4차선 도로를 따라 오직 차를 타고 다녔던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옛날에 춘천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신연강 나루를 건너 서면 덕두원에서 석파령을 넘어야 했다. 석파령은 춘천으로 부임하는 부사와 이임하는 부사가 영마루에서 돗자리를 나누어 깔고 환송하던 곳에서 유래하며, 석파령에는 당시의 주막과 민가가 있었던 유적이 발굴된다.”
- 춘천의 지명유래 -
석파령너미길을 직접 걷게 된 건 딱 1년 뒤인 2022년 가을이다. 2022년 10월, 더디퍼런트트래블과 춘천 예술가가 협업하여 <춘천 봄내길 걷기여행 :: 예술가와의 동행>을 두 차례 떠났다. 기획은 2022년 5월부터 시작되었다. 이제는 오가는 이가 많지 않은 석파령너미길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재발견하고 지역문화와 연계하여 사람들과 걷기여행을 떠나는 것을 프로젝트의 방향으로 삼았다. 또한 봄내길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사)문화커뮤니티금토의 전문 인력이 기획 단계부터 함께하여 걷기여행의 밀도를 높였다. 석파령너미길의 역사와 유래를 예술가들과 공유하고, 지역자원을 탐구하고, 두 차례의 사전답사를 떠나는 등 여러 단계를 거쳤다.
예술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석파령너미길
푸릇한 잎이 올라오는 여름을 지나 선선한 가을이 다가오는 시점에 우리는 걷기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석파령너미길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는 무디따 지현옥, 김희정 그리고 조각가 빅터조가 함께했다. 나름 신선한 예술가 3인의 조합으로 당림초등학교에서 시작한 걷기는 예헌병원까지 이어졌다.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는 예헌병원 앞에는 빅터조 작가의 위트있는 팻말이 세워져있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 윤종신 ‘오르막길’ -
빅터조 작가의 기획 의도와 석파령 유래에 대한 설명이 더해지며 여행 초입의 긴장을 다졌다. 그리고 진정 웃음기를 살짝 걷어내고 걷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사진 촬영을 함께 맡은 나는 걷기 난이도가 홀로 배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자 템포에 맞추어 산길을 걸었기에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넓은 편이었고, 여행자들의 설레는 얼굴과 홀가분한 뒷모습을 찍으려면 홀로 많이 움직여야 했다. (물론 안전을 위해 선두와 후미에서 스태프들이 안전하게 인솔하였다.)
첫 번째 여행의 테마는 플로깅, 두 번째는 반려견과 동행. 기왕 떠나는 걷기여행에 테마에 의미를 더하고 싶다는 의도가 덧붙여졌다. 가끔 보이는 등산객들이 쓰레기를 주운 덕인지 많은 쓰레기를 발견하진 못했다. 모두 더해 고작 봉지 하나를 채운 정도랄까. 쓰레기를 주우며 열심히 산길을 오르고 올라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정상에는 빅터조 작가의 거대한 바우상이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반겨줬다. 바우와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포즈를 따라 하는 등 현장에는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시작된 무디따 김희정의 걷기 명상. 자리에 잠시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온 정신을 ‘지금, 여기’에 집중시켰다. 김희정의 안내에 따라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하산하는 길에는 말을 줄이고, 발바닥에 닿는 감각에 집중해볼 것을 제안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최대한 자기 감각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나는 살짝 맺힌 땀을 식히며 자연의 소리를 경청했다.
어느 정도 산길을 내려가자 덕두원 마을 길을 만났다. 작은 과수원과 밭이 펼쳐진 좁다란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덕두원에 베이스를 두고 하루 여덟 시간 이상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한 번도 안쪽으로 걸어볼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는 점이 내심 아쉽다. 그렇게 걷고 걸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봉덕사에서 무디따 지현옥의 가이드에 따라 이완요가가 진행되었다. 명상과 마찬가지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며 몸을 충분히 풀어주었다. 고생한 여러 쌍의 발들이 매트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며 여행이 끝나가는 아쉬움을 느꼈다. 늘 출근길에 지나던 봉덕사였는데, 꽤 많은 사람이 봉덕사 공터에서 매트를 깔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는 건 또 색다른 재미였다.
이야기가 쌓이는 걷기여행
옛길을 걷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은 길이 잘 다져진 상태일 테고, 옛날에는 훨씬 험난했을 이곳을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걸었을까. 유람객의 문헌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길이라는데, 빈곤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렸을 적 시골 산길을 걷던 기억으로 그 마음을 대충 유추할 뿐이었다. 춘천으로 향하는 마음, 춘천을 떠나는 마음. 오랜 시간 두 발로 걷는 여정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큼이나 가는 과정 또한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곱씹어보는 일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은 계속 길 위로 발길을 옮긴다.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쌓여 탄생한다는 문화커뮤니티금토 유현옥 이사장의 말처럼 2022년 10월 두 번의 걷기여행을 통해 쌓인 이야기가 석파령너미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자전거를 타고 석파령너미길을 넘던 라이더, 길을 관리하고 보수하던 지역 관계자 등 두 번의 여행길에 만난 다른 이들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석파령너미길은 앞으로도 더욱 풍성해질 예정이다.
조재‘s OFF THE RECORD
기획 단계가 아닌 10월 첫 걷기여행부터 동행하게 되었다. 여행프로그램을 기획하던 지니의 갑작스러운 인도네시아 출장행(레드님 호출로 당일 인도네시아로 떠나 한 달간 돌아오지 못한 그..⭐️) 으로 얼레벌레 촬영 담당자가 되었지만, 봄내길 걷기여행은 더디퍼런트트래블 구성원 모두가 함께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의미 있었다. 그렇지만, 사진 촬영하며 산길을 걷는 건 정말 난이도 높은 일임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아이고)
글 _ 조재
사진 _ 조재
처음 만난 지명 ‘석파령’
석파령이라는 지명을 처음 접한 건 2021년 가을이었다. 오랫동안 춘천에 터를 잡고 살아온 어르신들의 구술생애 인터뷰를 담당하고 있을 당시 만난 송옥순 님과의 인연이 그 시작이다. 고목 같은 거대한 은행나무가 보이는 덕두원 송옥순 님의 자택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1930년대 태어나 가평에서 춘천 서면 덕두원으로 시집오며 힘든 시집살이를 하게 되었다는 그의 이야기에 ‘새파랑 고개(석파령 고개)’라는 지명이 등장했다.
옛날에 가평에서 춘천으로 가려면 다 석파령너미길을 넘어야 했다는데,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도 그 길이 눈에 훤한 듯했다. 싸리재(가평 북면)며 석파령이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지명들이 대화를 가득 채웠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자전거처럼 사람이 페달을 밟는 형태의 인력거가 너덧 대는 한꺼번에 다녔다고 하니, 석파령너미길이 아주 좁은 길은 아니겠다 싶었다. 더디퍼런트트래블을 운영하는 알플레이 본사가 마침 춘천 서면 덕두원에 있어 언젠가 한 번쯤 가보면 좋겠다 정도의 가벼운 인상이 남았다.
역사와 시대가 녹아 있는 길
석파령너미길은 춘천 봄내길 중 세 번째 길로 서면 당림리와 덕두원리를 잇는다. 덕두원 봉덕사와 수레너미고개까지 지나면 방동리가 나온다. 마지막 종착지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칭송받는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묘. 장장 다섯 시간을 걷는 꽤 대장정 로드다. 가평을 지나 춘천으로 이어지는 자동차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모두 석파령너미길을 통해 춘천에 오갔다고 전해지는데 육상길이 아닌 북한강을 따라 뱃길로 이동하기도 했다고. 넓은 4차선 도로를 따라 오직 차를 타고 다녔던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석파령너미길을 직접 걷게 된 건 딱 1년 뒤인 2022년 가을이다. 2022년 10월, 더디퍼런트트래블과 춘천 예술가가 협업하여 <춘천 봄내길 걷기여행 :: 예술가와의 동행>을 두 차례 떠났다. 기획은 2022년 5월부터 시작되었다. 이제는 오가는 이가 많지 않은 석파령너미길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재발견하고 지역문화와 연계하여 사람들과 걷기여행을 떠나는 것을 프로젝트의 방향으로 삼았다. 또한 봄내길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사)문화커뮤니티금토의 전문 인력이 기획 단계부터 함께하여 걷기여행의 밀도를 높였다. 석파령너미길의 역사와 유래를 예술가들과 공유하고, 지역자원을 탐구하고, 두 차례의 사전답사를 떠나는 등 여러 단계를 거쳤다.
예술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석파령너미길
푸릇한 잎이 올라오는 여름을 지나 선선한 가을이 다가오는 시점에 우리는 걷기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석파령너미길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는 무디따 지현옥, 김희정 그리고 조각가 빅터조가 함께했다. 나름 신선한 예술가 3인의 조합으로 당림초등학교에서 시작한 걷기는 예헌병원까지 이어졌다.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는 예헌병원 앞에는 빅터조 작가의 위트있는 팻말이 세워져있었다.
빅터조 작가의 기획 의도와 석파령 유래에 대한 설명이 더해지며 여행 초입의 긴장을 다졌다. 그리고 진정 웃음기를 살짝 걷어내고 걷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사진 촬영을 함께 맡은 나는 걷기 난이도가 홀로 배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자 템포에 맞추어 산길을 걸었기에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넓은 편이었고, 여행자들의 설레는 얼굴과 홀가분한 뒷모습을 찍으려면 홀로 많이 움직여야 했다. (물론 안전을 위해 선두와 후미에서 스태프들이 안전하게 인솔하였다.)
첫 번째 여행의 테마는 플로깅, 두 번째는 반려견과 동행. 기왕 떠나는 걷기여행에 테마에 의미를 더하고 싶다는 의도가 덧붙여졌다. 가끔 보이는 등산객들이 쓰레기를 주운 덕인지 많은 쓰레기를 발견하진 못했다. 모두 더해 고작 봉지 하나를 채운 정도랄까. 쓰레기를 주우며 열심히 산길을 오르고 올라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정상에는 빅터조 작가의 거대한 바우상이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반겨줬다. 바우와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포즈를 따라 하는 등 현장에는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시작된 무디따 김희정의 걷기 명상. 자리에 잠시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온 정신을 ‘지금, 여기’에 집중시켰다. 김희정의 안내에 따라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하산하는 길에는 말을 줄이고, 발바닥에 닿는 감각에 집중해볼 것을 제안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최대한 자기 감각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나는 살짝 맺힌 땀을 식히며 자연의 소리를 경청했다.
어느 정도 산길을 내려가자 덕두원 마을 길을 만났다. 작은 과수원과 밭이 펼쳐진 좁다란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덕두원에 베이스를 두고 하루 여덟 시간 이상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한 번도 안쪽으로 걸어볼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는 점이 내심 아쉽다. 그렇게 걷고 걸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봉덕사에서 무디따 지현옥의 가이드에 따라 이완요가가 진행되었다. 명상과 마찬가지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며 몸을 충분히 풀어주었다. 고생한 여러 쌍의 발들이 매트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며 여행이 끝나가는 아쉬움을 느꼈다. 늘 출근길에 지나던 봉덕사였는데, 꽤 많은 사람이 봉덕사 공터에서 매트를 깔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는 건 또 색다른 재미였다.
이야기가 쌓이는 걷기여행
옛길을 걷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은 길이 잘 다져진 상태일 테고, 옛날에는 훨씬 험난했을 이곳을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걸었을까. 유람객의 문헌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길이라는데, 빈곤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렸을 적 시골 산길을 걷던 기억으로 그 마음을 대충 유추할 뿐이었다. 춘천으로 향하는 마음, 춘천을 떠나는 마음. 오랜 시간 두 발로 걷는 여정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큼이나 가는 과정 또한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곱씹어보는 일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은 계속 길 위로 발길을 옮긴다.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쌓여 탄생한다는 문화커뮤니티금토 유현옥 이사장의 말처럼 2022년 10월 두 번의 걷기여행을 통해 쌓인 이야기가 석파령너미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자전거를 타고 석파령너미길을 넘던 라이더, 길을 관리하고 보수하던 지역 관계자 등 두 번의 여행길에 만난 다른 이들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석파령너미길은 앞으로도 더욱 풍성해질 예정이다.
조재‘s OFF THE RECORD
기획 단계가 아닌 10월 첫 걷기여행부터 동행하게 되었다. 여행프로그램을 기획하던 지니의 갑작스러운 인도네시아 출장행(레드님 호출로 당일 인도네시아로 떠나 한 달간 돌아오지 못한 그..⭐️) 으로 얼레벌레 촬영 담당자가 되었지만, 봄내길 걷기여행은 더디퍼런트트래블 구성원 모두가 함께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의미 있었다. 그렇지만, 사진 촬영하며 산길을 걷는 건 정말 난이도 높은 일임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아이고)